금달랜드

랩소디 인 블루

turnleft 2007. 3. 25. 17:50

함께 춤추실래요?
밝은 음악의 구름 위를 함께 날아갈까요
- Shall we dance

오늘은 지옥 사냥개를 소환하는 퀘를 마무리하고 나니 딱히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았어.

그래서 톱니항에 온 김에 근처에 할 퀘스트가 없을까 살펴봤지.
이리 저리 뒤져보니 먼지진흙 습지대에서 마루둥지 와이번의 독을 모아오는 일이 하나 있더라고.
딱 좋다 싶어 마루둥지를 향해 열심히 뛰어 갔어.

그랜드캐년을 떠오르게 하는 절묘한 모래 기둥과 절벽들이 있는데, 그다지 멋있지는 않아.
휑한 바람이 불고, 주변에 굶주린 늑대나 짐승들만 간간히 있어 을씨년스러움을 더하고 있었거든.
제발 얼라 한 명이라도 지나가면 안 되겠니?

한참을 달리니 곰 발바닥 모양으로 된 지형이 나타나고 마루둥지 와이번이 펄럭 거리며 날고 있더군.

『오케이! 여기군』


관객은 없어도 스텝 밟기는 시작된다

『자아, 이제부터 골드문 님이 캘가와 함께 즐거운 사냥을 시작하시겠음!』

적적함을 달래볼까 하여 콧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사냥을 시작했지.

『흠으으으흠, 흠흠흠~』

골드문, 장단에 맞춰 사뿐거리며 스텝을 밟기 시작했어.

예전에 누군가가『흑마는 말야, 컨트롤이야!』라고 말하더라고.

그래서 언제가 있을지 모르는 1:1 pvp 상황을 대비해서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아도 될 Q 키와 E 키를 열심히 누르며
제자리에서 캘가만을 패고 있는 와이번 주위를 빙빙 돌며 법봉질하며 생쑈를 했어.

어때... 아무도 없잖아.
언젠가 이런 수련이 흑마에 걸 맞는 컨트롤에 도움이 될 꺼라고 생각하면서 말야.


반갑지 않은 관객, 호드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쇼’를 지켜보고 있던 저렙 호드가 하나 있었던 거야.
'저 얼라 아짐이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하고 지켜보고 있었겠지.

그런데 피식 웃고 끝났으면 좋을 것을
친구, 삼촌, 옆집 아저씨를 다 불러 왔나 봐.
보이는 넘들은 모두 해골이야, 펄럭 거리며 날고, 말 탄 호드들이 다 왔어.

36렙 흑마 언니 하나를 잡는데, 진정 그 인구가 다 출동해야 하는 거야?

『자자,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쇼를 훔쳐 본 것은 용서해 줄게... 』

『... 』

당근 아무런 대답도 없겠지.

『웃기면 웃고 말 것이지, 꼭 죽여야 하는 거야?』

호드와 얼라는 문답무용, 서로 죽여야 할 운명을 타고 났는지 몰라.

그래서 그 정도는 봐주기로 했어.



컬러로 된 세상에 살고 싶어

묘지에서 뛰어가면서 주변을 봤어.

역시 흑백으로 본 세상은 아름답지 않아. 컬러 세상을 고대하며 열심히 달려갔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시체 주변을 휘휘 돌며 놈들이 있는지 살펴 봤어. 다들 갔더라고.

그래서 다시 사냥을 시작했지.
넘들은 아마 내가 올지를 알고 있었을 거야.
그건 지금 막 10렙을 찍은 어린 풀벌레 호드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

그 넘들은 5분이 채 안 되어 다시 달려오더라고.
그 주변에 잡을 대상이 나밖에 없나 봐.

그렙에 그 숫자에 골드문 하나 잡는 건 인건비도 안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골드문을 끝까지 약올리기로 했나 봐.

운 좋으면 열 받은 얼라들이 달려와서 전면전이라도 한번 치를 것을 기대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호드한테 죽는다고 볼맨소리 할 골드문은 아니니 호드 친구들 좀 아쉽겠어.


그 넘의 퀘 아이템이 뭐가 그리 중하다고

무덤에서 달리면서는 '도착해서, 주변 살피고, 부활한 다음에 붕대질 한번 하고, 얼른 귀환한다...' 뭐 이런 계산을 하면서 왔는데, 도착해서는 마음이 싹 바뀌더라고. 퀘스트 창에 나타나는 '8/10' 이라는 숫자는 귀환의 뜻마저 꺾게 만드는 대단한 힘이 있었어.

'2개만, 2개만 더 모으면 끝이야... 몇 번 눕는 것 따위로 포기할 순 없지!'

이 2개가 대단한 것일 거란 기대는 버려!

바보 같이 죽으면서 얻어야 할 정도로 중한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골드문에게는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하나의 의미가 돼. 의미 없는 것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 이게 골드문의 스타일이지. 무슨 똥 고집이람.

그래서 또 달려갔지.

또 다시 5분 뒤에는 넘들이 나타날 걸 알아.

결국 마루 둥지에 있는 와이번들을 다 넉 다운시키면서 이 2개를 채웠어. 뿌듯 ^^v


낙엽 썰리는 소리 들어봤어?

나이스 타이밍!

그렇지, 이넘의 호드 넘들도 이 뿌듯한 순간을 지나쳐 버릴 리가 없지.
결국 말을 탄 부대가 우르르르 몰려와서 골드문은 낙엽처럼 쓰러져 버렸어.

스르륵...』  골드문이 썰리는 순간이야.

눈물이 '핑'하고 도는 와중에도
'아, 영석을 걸어 놓았으니, 저넘들 물러나면 바로 일어나서 귀환 타고 가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바깥은 한창 볕이 좋은 휴일인데, 간만에 아제로스 탐험 좀 하겠다는 흑마 하나를 잡겠다고
1시간 내내 골드문 주변을 맴돌았을 넘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며 다시 달렸어.

생각해 봐, 호드 잡겠다고 열나게 말타고 날라서 갔는데, 호드 풀벌레조차 안 보이면 무지 허망하잖아. 제발 빨간색 이름이나 뭐나 하나만 나타나라... 이렇게 뭐라도 잡고 싶은 심정 말야. 위로가 좀 필요하겠지!

흐흐, 이제는 진짜 마을로 간다고.』


여관에 서서

간만에 맞는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의 휴식 시간을 이렇게 보냈어.

몇 번을 누워도 괜찮다고 큰소리치며 퀘 아이템을 먹던 골드문이지만 여관에 오니 긴장이 쫙 풀리는 것이 다 녹아서 흘러내릴 것 같아. 역시 긴장을 많이 했나 봐.

눕는 게 일상이 된 아제로스의 하루하루.

전에는 너무나 약해서 쓰러지는 게 힘들었지만 그 고비를 잘 넘겼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다시 조금씩 힘들어지는 것 같아. 당분간은 얼라 지역에서 말 타는 꿈이나 꾸며 지내야 할까 봐.

어느 날 서버에 등장한 천하 무적 기사에 대항하기 위해 멧돼지만을 잡으며 렙업을 했던 사우스파크의 카트만과 친구들처럼 나도 어디서 저렙 몹이나 열심히 잡아야 하는 걸까.

오늘 밤에는 부디 접속할 기운이 나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