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골드문에게 가덤으로 가라 했나
무법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40렙이었는데, 나올 때는 44렙이었습니다.
가시덤불 골짜기, 골드문에게는 두 번째 고비가 된 곳입니다.
가덤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이 세계에 온 것을 조금씩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슬쩍 다른 곳으로 도망갈까 싶은 적도 있었지만
그런다고 이런
그래서 정면돌파 하기로 했습니다.
결과는 아마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가덤에서 몇 날을 더 있게될지는 모르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이런 바보 같은 후회가 밀려온다면 그때는 가볍게 아제로스에 이별을 고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내 처음 가덤을 향해 올 때처럼 다른 곳을 향해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고 떠나는 날을 맞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이런 고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2007-4-12 by Goldmoon)
레벨의 부름을 받아 무법항으로
그늘 숲에서 달려 반란군의 야영지를 지나 무법항에 다다랐을 때는 정말 땀을 흠뻑 쏟은 듯 피곤했어. 언제나 처음 가는 곳에서는 아니라고 해도 어느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나봐.
통나무와 널빤지를 덧대어 짜 놓은 긴 통로를 따라가니 어느새 눈 앞에 빛나는 바다가 펼쳐졌어.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건설한 항구, 탁 트인 것이 시원한 곳이야. 갑자기 주문진 가서 오징어 회를 먹고 싶어. 아니… 이게 아니지. 어느 도시건 마을이건 일단 도착하면 여관에 여정을 풀어야지.
무법항에 도착해서 난 여관을 찾아보았어. 여관 주인에게 인사라도 해놔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길 것 같았거든. 여행자에게 여관은 휴식처야. 골드문에게는 꿀단지 같은 곳이고. 여관까지 가는 길에 스치는 나그네들은 상당히 까칠해 보였어. 모두 바쁘게 뛰어다니기는 하지만 활기차다기 보다는 뭔가 상처 입은 것 같이 말야.
무법항 식 환영 인사
널빤지 길을 타박타박 뛰어가다 보니 여관이 있는 선술집이 보여. 뱃사람들의 휴식처라니 근사한 곳일 것 같아. 가다 보니 곤드레만드레 취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선원도 있고, 낚시꾼도 있고 역시 뱃놈들이 있는 곳은 달라! 어느새 콧노래를 부르며 선술집에 들어갔지.
선술집은 약간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어. 눈을 잠시 멀게하듯 밝은 빛이 번쩍하더니 『뿌직, 파지지지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호드님들의 좀 요란한 환영을 받았어. 그냥 말하면 들어가자 마자 눕고 말았다는 거지.
『엄, 있지... 난 저기, 잠시 주인장을 만나려던 것 뿐이야... 아직 잘 때는 아니거든 ;;』
물론, 얘기가 안 통해. 내가 무법항의 여관에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주인과 얘기하여 귀환을 도와달라고 얘기한 것이 아니라 그 쌀쌀맞은 치유사 아짐에게 먼저 사정을 해야 했다고.
『살려주삼!』
이때, 무법항이 얼마나 무법시렵게 다가올지 속된 말로 ‘눈치 깠어야’ 하는 건데. 순진한 골드문 그냥 무법항 식 인사인가 했지. 여기서 두번 째 고비를 맞게 될 줄은 몰랐던게야.
무법항의 첫 인상은 여기 저기서 번잡스럽게 같이 일하자고 외치는 것이 살아있는 도시 같았어. 골드문이 바로 온 황야의 땅은 그야말로 황량한데다 잠깐의 모험이라도 같이할 동료들을 찾기조차 힘들었어. 시장 통 같은 사람들의 외침을 보고 있자니 나도 곧 저 대열에 합류하여 무법항의 사람이 될 것 같아 좀 전에 것도 여관에서 자빠졌다는 것은 생각도 않고 은근한 기대감에 빠져들었어.
미로 같은 무법항
골드문, 공간 지각 능력은 동성에 비해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와보니 아니올시다야. 무법항은 현기증 그 자체였어. 여기 저기 같은 놈이 서있고, 분명 1층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 한 층을 내려가 보면 다시 1층인 듯하고, 열심히 올라가서 상점으로 들어갔다가 한 바퀴 돌아 나왔을 뿐인데, 같은 자리가 아니더라고. 무법항의 상세 지리를 익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
익숙하지 않은 지도와 희미한 조명, 찾아 가면 사라지는 것 같은 무법항 용사들, 새로운 곳이 주는 낯섦… 무법항 졸업장을 억지로 빼앗아 나온 지금은 머리에 지도를 그릴 정도지만 그때는 모든게 막막했어.
사실 비밀이 하나 있는데, 아직도 대장간은 못 찾았어. 그냥 ‘무법항은 나무로 만든 곳이라 가열로를 만들지 않았을 거야’ 하면서 길 찾기에 실패한 것에 대한 골드문식의 논리를 만들어서 덮어씌웠어.
죽어도 끝은 아니었어, 접속을 끊어 끝을 만들고
'쟈이칸킹', 요즘 짧아지는 내 메모리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야.
골드문보다 4레벨이 높은 오크 흑마가 뒤치기를 했어. 싸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니 싸우려 해도 게임이 안 돼. 보통 비슷한 렙이 있으면 ‘저 넘이 날 칠 때, 어떻게 반격해 줘야 할까’를 생각하는데, 나보다 렙이 높은 흑마에 대해선 고민 자체가 통하지 않더라고.
이때야 가덤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어.
『엿. 됐. 다!!!』
이런 불길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어. 난 여기서 된통, 된통, 된통 당할거야!
골드문이 누구 원한 살만큼 분탕질을 하고 다닌 적이 없는데. 자기 보다 4렙이나 낮은데도 죽어라 쫓아다니면서 뒤치기를 하다니 내 상식으로는 도통 이해가 안 가는 오크였어. 죽이면서도 민망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봐.
내게 불질을 해대며 피를 빼가는데도 현혹되어서 하트를 뽐뽐 뿌리면서 찍소리도 못하고 죽고, 다른 곳으로 가서 이제는 됐다 싶어 퀘스트 삼매경에 빠질라 하믄 또 어느새 와서 죽이니 죽고, 다시 달려와서 부활하여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어나 퀘스트 아이템을 구하려고 고릴라를 잡다가 뒤치기 당해 또 죽고, 투자개발회사 광부를 잡다가 뒤치기 하니 또 죽고, 달리고, 죽고, 달리고를 반복했어.
그날따라 멘탈에 살짝 기스가 난 것 같은 넘 때문에 내가 하던걸 놓고 싶지는 않았어. 지금 생각하면 그냥 접속을 쓱 끊고 나오는게 상책일 것 같은데 말야.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변에 그넘한테 죽은 법사가 하나 있어 같이 파티를 하고, 그넘이 오길 기다렸지. 그래서 결국 그넘을 두 세 번 잡고, 하던 퀘 하나를 마치고 바로 접속을 끊었어. 난도질 하는 넘을 몇번 죽이니 분이 풀려서가 아니라 그냥 내 시간을 빼앗고, 날 괴롭힌 그넘이 너무 미워서 아제로스에는 단 1분도 더 있고 싶지 않았어. 부들부들.
놀이터에서 오뚝이처럼 버티고 싶지는 않아
골드문은 현실의 하루를 피곤하게 달려왔어. 사는 게 그렇잖아. 깊은 밤에는 그리핀을 타고 날며 즐거운 상상을 해. 그런데 요즘은 아제로스가 날 더 피곤하게 만들어. 가덤의 하루는 죽어도, 또 죽어도 끝나는 것이 아니었어. 내가 두 손 들고 로그 아웃을 해도 머리 속에는 지질한 잔상들이 남아서 돌아다녔거든.
다음날도 길에서 퀘스트 하는 곳에서 몹을 잡다가 혹은 달리다가 이유도 없이 쓰러져야 했어. 워낙 여러 번 눕다 보니 화가 나거나 복수의 칼을 갈거나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아. 그냥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모든 것에 무관심하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흑백 화면과 달리기도 이상하리만치 외면하고 싶었어. 그래서 그날도 그냥 아제로스의 문을 닫아 버렸어.
가덤의 처절한 신고식은 거의 매일이었어. 가덤에 온지 며칠 째 되는 날이었을까. 요즘 들어 인던만 뛰고 있는 시온이가 잘 지내냐고 묻길래 짧게 답을 했어.
『너 돌아왔을 때 내가 안 보인다면 가덤서 낙망하여 고이 접은 줄 알아라.』
호드에게도 얼라에게도 뒤치기를 하는 이에게도 당하는 이에게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가덤이란 걸 알아. 하지만 그날은 그냥 힘들었어.
그대들이 있어 든든해
호드들이 분탕질을 하고 다니면 어느새 고렙 얼라들도 하나 둘 나타나. 열심히 외치기도 하고 달려가서 호드들을 정리해 주기도 하고. 그래서 가끔 패트롤을 돌고 있는 얼라들을 보면 무지 존경스러워. 달려가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어.
나 좀 지켜달라고 말해보지는 않았지만 저 뒤 길가를 오가며 그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그래도 죽으란 법만은 없는가 싶어. 난 그래서 다시 한 발 씩 저 앞을 향해 걸음을 내 딛고 있었어.
나를 향한 외침은 아니건만 난 혼자 용기 충전하면서 다시 퀘스트에 빠져들었지. 가시덤불 골짜기 책장을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부탁하는 일을 해주면서 어느새 가덤의 일상에 성큼 성큼 합류하고 있었어.
고마워, 그대들이 내 뒤에 있다는 것만으로 내 마음은 든든했어.
미안하단 말은 사양하네
마을 밖을 나서는데, 같이 파티 하기로 한 친구가 입구에서 잡혔어. 호드가 아니고, 어떤 친구가 자기 퀘스트를 딱 3분만 도와달라고 통사정을 하는데, 이 친구 거절을 못하고 따라가며 골드문까지 엮어 들어갔어.
50렙이 넘는 정예 몹을 30-40렙들이 잡는다고 하는 좀 역부족인 상황에 호드 뒤치기까지 있어서 부활하고, 다시 모여 잡다가 뒤치기에 결국 작은 전쟁이 되었어. 결국 3분만 하자던 것은 난투극이 되고, 사람들이 모이고, 전쟁이 되어 결국은 1시간도 넘게 되었지.
내가 하려던 퀘스트를 못한 것보다도 그 친구들을 도우려 했던 것이 실패한 것보다도 항상 예상할 수 있는 예측 불허의 싸움에서 난 왜 항상 오합지졸이 되어야 하는지 우리는 왜 어떤 전술도 가지고 갈 수 없는지 하는 것 때문에 실망스러웠어.
그날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얼라이언스라는 허탈한 동료애 뿐이었지. 시간을 빼앗아서, 여러 번 죽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 보다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는 말이 오히려 인간적일 것 같은데 말이야.
난 처음 아무 조건 없이 이곳에 왔어.
아는 게 있어야 고민이 있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 별 생각도 없었어.
그런데, 『얼라이언스를 위하여!』 이 말을 들었을 때, 난 정말 내가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어.
뭔가를 위해 함께 간다는 것이 넘 멋있었거든.
그래서 생각했지, 난 얼라이언스라고.
그러니 친구, 날 눕게하여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말아.
그런 인사대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 그럼 누워있는 모습도 아름다워.
열심히 싸운 날은 말야, 몇 번을 눕더라도 낄낄거리고 웃을 수가 있거든.
또 한 걸음
전쟁 중에도 아이는 태어나고 자란다고 했나. 골드문에게는 항상 약자가 되는 것 같은 일방적인 전쟁 같았지만 그래도 퀘스트는 하나씩 완료되고, 서서히 렙도 변하고 있었어. 무법항과 안개 계곡 주변을 전전하다 거친 해안으로도 나서고 그롬골 주둔지에도 갔고, 트가시 폐허를 지나 줄다이아 폐허, 썩은내 산호초를 지나 네싱워리 원정대까지도 갔어.
나중에 보니 원래는 네싱워리를 먼저들 들르나 보던데, 40렙이 되어 가덤을 찾았던 골드문은 밑에서부터 시작해서 올라오려고 했는데, 맨날 죽다, 살다를 반복하다 보니 막상 네싱까지는 올라올 엄두도 못 냈던 것 같아.
매일 접속을 할 때는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기를, 뒤치기를 당하더라도 좀더 가뿐하게 날아서 정확하게 컨트롤하여 날 때린 놈의 급소를 찌를 수 있기를 바랐어.
가만 보면 골드문은 힘들다고 혼자 끙끙 앓으면서 두려워 한 곳이면서도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길고도 열정적으로 가덤을 즐기고 있었어. 그리핀 타고 싶다고 없는 일도 만들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가덤을 졸업할 수 있다면 그 다음 다른 어떤 곳을 가도 버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만약 아니라면 그냥 항상 힘든 것이 될 수밖에 없겠지. 골드문 성격엔 그런 것에 굳이 시간을 내어 매달릴 일은 없을 거란 것도!
그리고
가덤에 온지 며칠이 지났을까...
지금 이곳을 달리는 사람들의 상황은 모두 다를지도 몰라. 하지만 처음 이곳을 달리던 사람들, 그들이 호드였건 얼라였건 모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곳이었을 거야. 다들 처음은 이렇게 시작했을 거야.
그래서 골드문은 기꺼이 이 길을 가기로 했어.
4월 12일 저녁 10시 24분, 가덤 퀘를 마치고 무법항을 떠나면서
그리고 이 한 순간만을 고대했어.
가덤에서 모든 퀘를 마치고 떠나는 날, 그리핀을 타고 가면서 무법항을 내려다 보는 순간 말야. 그리고 크게 외치는 거야. 이 지긋지긋하고 힘겨운 가덤을 졸업했다고, 엎어져서 울고 싶었는데, 그래도 내 손으로 툭툭 털고 일어나 결국은 통과했다고 말야.
그리고 결국은... 이렇게 외칠 수 있었어.
정말 수없이 여러번 이곳을 드나들었지만 이런 멋진 풍경에 대해선 생각할 틈도 없었어.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니 이제야 하나 씩 눈에 들어와. 항구 입구에는 어디서 왔는지 새로운 모험자들 한 무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 그들도 가덤의 쓴 맛을 보겠지. 하지만 누구도 낙오할 것 같지는 않아보여.
『 지금 난 무법항을 떠나!
쓰러지지 않으면 이렇게 또 한 발짝 앞으로 내딛게 되나 봐.
시끌한 무법항아 안녕!
골드문을 지독히도 힘들게 했던 가시덤불 골짜기도 안녕!
골드문이 드디어 떠나, 졸업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