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오밀조밀한 맛이나 친근감이 물씬 넘치는 길드 분위기도 아니지만은 이 순간만은 급격하게 냉랭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난 길 창에서 돈 달라는 소리가 올라오는 게 반갑지 않다.
누군가 깨어주길 바라는 정적 같은 시간.
대부분의 경우 말을 꺼냈던 사람의 우는 시늉 ‘ㅠㅠ’으로 끝을 맺곤 한다.
천성이 인색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지만 다들 암묵적으로 ‘자신의 것은 직접 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생각도 딱히 다르지 않다. 누가 도와준다고 해서 1회 성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란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소리는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빈털터리
지난 주말... 이런 돈을 달라는 소리들이 있어 퍼주기를 해 보았다. 600골이 넘는 돈이 3일도 안 되어 바닥났다. 많아서 넘쳐서 퍼 준 것은 아니었다. 골드문이 얼마나 짤짤 거리고 다니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지금껏 나를 위한 사치라곤 16칸 가방 2개와 필요보다 한 번 씩 그리핀을 더 탄 것 뿐이었다.
난 이렇게 돈 몇 푼을 쉽게 주어 뿌리 내리지 못하던 친구 몇을 나락으로 떨어트렸을 수도 있고, 살짝 보듬어 준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예뻐서 준 것은 아니다.
골드문도 70렙이 되면 새를 사고 싶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다시 착실하게 골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돈이 원점으로 갔다고 해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갈증 같은 것이 있다면 좀 더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도 있고, 미션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더 재미나지 않을 싶다.
차근차근 하다 보면
와우는 그 레벨에 필요한 정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밸런스는 갖추고 있다. 차분히 하다 보면 최고를 가질 수는 없다 하더라도 기본을 갖출 수 있을 정도의 길은 제시하고 있단 말이다. 그 다음 더 좋은 것을 향해 가는 것은 그야말로 노력 –사실 MMORPG에서 노력이라면 그것은 시간이다- 이 있어야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욕망은 항상 저 높은 곳에 있고, 다들 그것을 향해가서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누구나가 기본 정도는 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니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전에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 봤으면 한다.
아제로스의 골드는 그 사람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매체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달라고 할 때, 스스로 줄 수 있는게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돈이 필요하면 친한 친구의 목을 졸라
친구 목을 10번을 조른들 누가 뭐라고 하겠나. 그러나 같이 즐겁자고 모인 길드에서는 돈 달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친한 사람들이 생기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만들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뭐, 돈 뜯어내려는 목적으로 만들라는 얘기는 아니다.
적어도 한 번은 스스로 가길 바란다. 그 길이 빠르지 않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는 재미가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