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문 보통은 접속해서 오늘 할 퀘 몇 개를 찍어 놓고, 위치를 파악하고 내용을 보는 혼자만의 브리핑을 잠깐 해. 그리고 출동하여 퀘스트를 완료하는 때도 있고 죽다가 죽다가 못 하는 날도 있지. 가끔은 옆에서 같은 퀘를 하는 사람과 파티를 맺어 하기도 하고 때로는 길드에서 누군가 휭~하고 나타나서 퀘를 도와줘서 끝내기도 하고... 뭐 이래.
혼자하는 퀘스트에는 쏠쏠한 재미가 있어서 때로는 다운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줄타기를 잘 하고 있어.
그.런.데.
요 며칠 이 줄타기 전선에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얼마전 길드에 새로 가입한 동기가 한 명 있는데, 뭔 문제만 있으면 골드문을 호출해. 길드에 하고 많은 사람을 두고 골드문을 부른단 말이지.
많은 경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며칠 전에 이미 한 퀘이기도 하고 같은 지역에 있는데다 특별히 파티에 매여 있지도 않은 터라 두어 번 달려가서 문제를 풀어 주었어.
하지만 한 문제를 풀고 나서도 가볍게 떠나올 수는 없었어. 다음 마을에 인도하거나, 다음 퀘스트도 잘 모르겠다든가 뭐 하여간 그때 그때 이유가 있었어.
파티를 하면 보통 즐거운데 말야, 함께 퀘스트를 하거나 도움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서 그럴까 아니면 이렇게 받는 것에만 익숙해진 이기적인 마음 때문일까 어젠 뭔지 모를 껄쩍지근함 같은 게 있었어.
뭐랄까, 67렙이나 되었는데 '내는 아무 것도 모릅니더' 하는 자세를 바라보는 게 편하지 않았달까?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68렙이나 되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는 골드문과는 별반 차이가 없군. - -
골드문이 이러는 건 이해가 가면서도 - 와우 초보에, 늙다리에, 접속 시간 짧은 것이 등등 - 그 친구가 그러는 건 좀 납득이 안 된다는 것이 - 어차피 그친구도 초보에, 늙다리에, 접속 시간 짧은 것은 같은데 - 웃기긴 하지만.
그래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는 건가! 역시 내 쪼잔함이었는지, 그래도 이 껄쩍지근함은 가시지 않아.
그 친구와 골드문 사이에 근소한 차이가 있다면 골드문은 앞에 놓인 문제와 시련을 즐기지. 좀 편하게 가보겠다고 남에게 기대지는 않는 다는 것 정도.
퀘스트를 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잖아. 그리고 남의 손을 빌기에는 한번 뿐인 초보 시절이 아까워. 말했잖아, 초보 시절을 사랑하는 골드문이라고.
내가 만약 만렙 캐릭 1-2개 정도가 있다면 이리 미련스럽게 하지는 않을 거야. 길드에 아쉬운 소리도 해 가면서 '인던 한번만 돌아주라 호호호' 그러고 있을 지도 모르고.
맞아! 뭔지 모를 껄쩍지근함은 바로 이 근처 어디선가 시작된 것이 분명해! 느낌이 와.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고...
한 이틀을 이 친구가 부르는 곳을 찾아가 몹을 물리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 퀘스트를 찾아보고, 설명을 조금 더 하고, 골드문 역시 익숙하지 않은 퀘라 헤매기도 하고... 이런 걸 반복하다 12시가 넘고, 피곤해지고, ... 접속을 끊은 것 같아.
"시작해봐" "..." "가방에서 퀘 아이템 찾아봐, 여기서 쓰면 돼." "..." "없어?" "필요 없어서 버렸나봐, 귀찮으면 그냥 버리거든"
그래서 다시 가서 퀘스트를 받은 적도 있어.
"그 마을은 지도에서 북쪽으로 달리면 돼..." "..." "마을 찾았어?" "아니 그냥 있어. 잘 모르겠다, 길치라 잘 모르니 데려다 줘..."
가끔 퀘스트를 건너뛰고 하기도 해서 지도가 안 열린 부분이 있다고 하여 결국은 직접 데리고도 갔고.
내가 피곤한 것은 단순히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서만은 아냐.
처음에 어디선가 나타난 이 친구가 '문아 도와줘' 했을 때는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겠구나 싶었어. 아니, 나도 누군가를 도와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지. 내 앞에 놓인 duty 같은 거 있잖아.
골드문은 이모저모로 길드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 혼자도 잘 하고 있으니 염려 말아라 해도 소리 없이 날라와 어느새 힘겨운 상황을 함께 넘어주는 길드원들을 보면 나중엔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그리고 '꼭 그래야지...' 하고 말야.
그런데, 내 앞에 놓인 이 신성한 의무를 두어 번 했다고 지치다니...
입장이 바뀌어서 그럴까, 안 하던 짓 해서 그런 걸까.
그런데,
"그래도 네 퀘인데 찾으면서 해야지 ㅋㅋ" 하고 물었을 때,
"복잡하거나 모르는 건 그냥 안 하는거 알잖아!"
하고 답하는 걸 들으니 맥이 확 풀렸 버리더라고. 그리고 번뜩 거리면서 내 머릴 치는 질문들이 있었어.
'귀찮은 건 안 한다는 걸 아냐고? 아니면 그런 건 남이 해 주는 거라고? 내가 뭘 알고 있을까, 내가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건 뭐지?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을 왜 난 도와야 하는 거지?' 하고 말야.
그래, 이게 그 껄적지근함의 본질이었어.
- 어쩌면 이건 핑계고, 만렙을 목전에 두고 만렙 찍는다고 호언장담하고는 내 퀘를 몬 하고 있으니 그저 엉덩이만 들썩 거리고 앉아 있는데서 오는 불만일지도 몰라 -
아... 어찌 되었건 오늘 저녁에도 저런 태도로 골드문을 부른다면 거절할거야.
나만의 시간으로 빠져들어 유유히 솔로잉에 매진하는거지.
스스로 즐거운 것이 아니라 뭔지도 모를 것을 향해 그저 남에게 기대는 것이라면 함께하고 싶지 않거든.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건 돕는 것도 기쁜 그런 시간이 되길 바래.
사족. 한 가지 그 동안 골드문을 데리고 다녔던 길원들의 고충을 조금 알게 되었단 거지. ^^;;